세월호의 정치학
View 25,426 | 작성일2015.05.0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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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학보 이야기를 보고, 쓰고 싶었던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습니다.
1.
길을 걷던 어린이가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던 자동차에 치였습니다.
그렇지만 자동차를 운전하던 운전자는 길바닥에 쓰러진 아이를 버려두고 도망쳤고, 그 아이는 결국 숨을 거뒀죠. 운전자가 그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다만 줬어도, 아니 그냥 경찰에 신고만 해줬어도 아이는 살 수 있었는데, 그 운전자는 길바닥에 아이를 내버려둔 채 도망쳤고, 결국 그 아이는 죽고 말았어요.
그런데 그 아이의 부모는, 이게 다 정부 때문이니 정부와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거품을 물면서 난리를 치네요. 아이가 죽은 건 가슴아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이 아이의 목숨까지 다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부모는 일년째 지치지도 않고 대통령이 책임지라면서 별 짓을 다 하고 있어요.
야당 정치인들, 그리고 사회 불만 세력들은 이때가 기회라는 듯이 부모와 부화뇌동하면서 같이 정부를 공격하고 있고요.
가슴아픈 일인 건 맞는데, 이게 정치사건인가요? 왜 대통령에게 다 책임지라고 저러는 걸까요? 물론 대통령이 이 나라의 수장이긴 하지만, 저런 교통사고까지 무조건 다 대통령이 책임지라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요.
지금 제가 말한 것이, 이른바 51.6%에 속한 사람들의 시각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누군 자식 안 키워봤냐, 물론 내 자식이 죽으면 나도 가슴이 아프고 정말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이걸 저렇게 정치문제화하는 것이 맞는 건 아니라는 거죠.
사실 냉정하게 보면, 저렇게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반드시 틀린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하루에도 여러명의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죽고, 죽은 사람들 중에서는 아이들도 꽤나 있는데, 이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결국 세월호도 그런 교통사고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는 없는 것 같은데, 세월호만 왜 그렇게 시끄러운 걸까요?
2.
시작을 교통사고 이야기로 했으니, 교통사고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사실 아이가 사고를 당한 지점은 횡단보도였어요. 그 횡단보도는 초등학교와 유아원 등이 밀집한 지역과 주변의 대단지 아파트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에, 아이들이 등하교를 하려면 반드시 그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죠.
그래서 주민들은 그 횡단보도에 구름다리를 설치해달라고 요구를 했는데, 행정청은 이를 계속 무시해왔어요.
게다가 신호등도 관리를 하지 않아, 사고 한달 전부터는 아예 신호등도 작동하지 않았죠.
그런데 그 아이는 비오는 어둑어둑한 날 아침, 학교에 가려고 신호등도 들어오지 않은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사고를 당했던 거에요.
자, 이제 다시 생각해보죠.
이 사고에 대해, 여전히 행정청이 아무런 잘못이 없는 걸까요?
이 이야기에 배경을 좀 더 추가해보죠.
사실 당시 운전자는 아이를 구조하지는 않았지만, 경찰에 신고는 했었어요. 그래서 경찰이 출동을 했죠.
그런데 그 자리에 온 경찰은 아이를 구조하지 않고, 주변에서 아이를 구경만 하고 있었어요. 이 상황을 본 시민들이 아이를 구하려고 뛰어들었지만, 경찰들은 시민들의 접근도 막으면서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방치했죠.
이제 다시 물어보죠.
이 사고에 대해, 여전히 국가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걸까요?
이제 슬슬 세월호와 비슷해지고 있는데요, 더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한 가지 설정을 더 추가해보죠.
아이가 죽고 나자, 아이의 부모들은 어쩌다가 그런 사고가 났는지, 왜 신호등은 고치지 않았는지, 경찰은 와서 왜 구경만 했는지, 철저하게 수사를 해주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대통령은 당시 출동한 말단 경찰 하나만 문책을 하고, 아예 그 사고를 담당했던 부서를 해체하고 사람들을 다른 부서로 배속시켜버렸어요. 그리고 수사는커녕, 부모가 사실을 알아보려고 하는 것까지 막았죠.
이제 한 번 더 물어보죠.
이 사고에 대해, 여전히 국가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걸까요?
3.
세월호 문제와 관련하여, 51.6% 해당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 사회에 발생하는 문제들 중 사회 시스템과 관련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법학을 기준으로 할 때, 일반인들의 자유 의사와 책임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는 것이 민사법 중 계약법 분야일 것입니다. 일반인간의 계약은 당사자의 자유의사가 가장 중요하고, 책임 역시 각자가 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정말 계약법이 당사자의 자유의사만으로 결정되는 것일까요?
당사자의 자유의사만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그 세계는 이번에 리메이크되어 개봉되는 매드맥스와 동일한 사회가 될 겁니다. 총과 폭력만이 진리인 세계 말이죠. 왜냐고요? “당사자의 자유의사대로 계약이 이행되는 것을 보장하는” 사법과 경찰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애초에 법이라는 것 자체가, 국가에게 독점적인 권력 행사권을 인정하고, 그 권력으로 시스템을 유지하라는 의미에서 존재하는 겁니다. 아니 법만이 아니라, 국가권력 전체가 그런 이유로 존재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사회의 문제들 중 사회 시스템과 관련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성립되는 겁니다. 그것이 설사 사적자치가 절대적 지위를 갖는 민사법의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더구나 교통사고나 대형 참사의 경우에는 더더욱 사회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교통은 대표적인 경찰 업무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경찰권이라는 것 자체가, 행정권력이 갖는 물리력의 상징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대외적인 적에 대한 국가의 물리력이 군에 의해 구현된다면,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행정권력이 갖는 물리력은 경찰에 의해 구현되죠.
그러한 경찰력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분야가 바로 교통입니다. 이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죠. 미국도, 일본도 교통은 경찰의 관할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교통이야말로 사회적 시스템과 행정권력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죠.
대형 참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권력이라는 것이 결국 국가의 항상성, 그리고 사회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를 위협하는 대형 참사야말로 국가 권력이 그 존재 이유를 보여야 하는 순간이라고 해야겠죠. 실제로 중국 쓰촨성 대지진, 미국의 대형 허리케인 참사 등의 자연재해에 대해, 중국이나 미국의 정부는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대처를 했습니다. 대지진이나 허리케인이야말로 순수한 자연재해이고, 그래서 재해 발생에 대해 국가가 아무런 책임이 없음에도 말이죠.
이제 세월호를 생각해보죠.
뭐 앞에서 이미 하고싶은 말은 다 나왔으니 길게 쓸 필요는 없을 겁니다.
설사 세월호가 단순한 일반 교통사고라고 하더라도, 국가가 이 사고에 대해 이렇게 대응을 하면 안 됩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국가는 세월호 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라고 국민들이 권력을 국가에게 부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세월호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대응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아이들을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수백명의 아이들을 포함한 희생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구경만 했죠.
사실 이것 하나만 해도 대통령이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대통령을 뽑아놓은 이유가 이런 거 대응하라고 뽑아놓은 것이니까요.
그런데 다들 잘 아시는 것처럼, 세월호 사고는 그 대응만이 아니라, 사고 발생까지도 국가에게 큰 책임이 있는 케이스입니다.
마치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횡단보도에 신호등을 고장난 채로 방치한 것처럼 말이죠.
게다가 이 배는 국정원이 치밀하게 관리한 배였습니다. 심지어 자판기 위치,CCTV위치까지 지정을 했다죠.
국정원이 그렇게 치밀하게 이 배를 관리를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배의 상태이상에 대해서도 국정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맞습니다. 자판기 위치까지 신경썼을 정도로 국정원이 배의 상태를 세세하게 직접 관리했고, 사고 당시 선장으로부터 국정원이 직접 보고까지 받았다니 말이죠.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150600035 )
그래서 세월호 사건은 매우 정치적인 사건입니다. 이런 사건에 대응하라고 뽑아놓은 대통령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지 못했으니까요. 이런 사건에 대응하라고 국가가 권력을 부여한 행정기관들이 쓸모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으니까요.
아니 그 이전에, 애초에 세월호 침몰사고의 발생 자체에, 국가가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이 분명하니까요.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써야 하는 세상에 산다는 것, 이것도 참 큰 비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