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경험담.
View 11,219 | 작성일2015.11.1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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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주인공인 selco는 발칸 반도 사람입니다.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무수한 전화를 입은 역사가 있지만, 특히 92년에서 95년 사이(보스니아 내전)는 가혹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전쟁 중 포위된 어느 도시에서 살아남은 남자의 이야기를 같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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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HTF expirience-wartime by selco
이제 내가 겪었던 경험담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영어가 짧으니 이해해달라.)
난 발칸 지역에 살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92-95년 그곳은 지옥이었는데, 나는 그 시기 인구 5~6만 정도 되는 어느 도시에서 1년간 전기, 연료, 상하수도, 식량 보급망, 그리고 기타 거의 모든 것을 입수할 수 없는 무정부 상태에서 살았다. 도시는 1년간 포위돼 있었으며 사실상 SHTF(재난) 상황이었다.
우리에겐 조직적인 군대나 경찰 같은 것은 없었고, 그저 총을 가지고 자기 집과 가족을 지키는 방어자들의 작은 그룹들로 흩어져 있었다.
우리 중 일부는 좀 더 나은 준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사태가 시작할 당시 대부분의 가정에는 며칠 분량의 식량과, 일부가 권총을 갖고 있었고, 소수만이 AK-47을 가졌다.
어쨌든, 한두달이 지난 시점에서 강도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병원은 도살장 같아졌으며, 경찰은 사라졌고, 병원 직원의 80퍼센트는 그냥 자기 집에 가버렸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우리 가족은 당시 꽤 큰 편이었고 (큰 집 한채에 15명의 가족이 있었고, 대여섯 자루의 권총에, 세자루의 칼라시니코프(AK) 소총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들 대부분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포위된 도시를 돕기 위해 미군 공군이 10일마다 MRE(미군 전투식량)를 투하해주었지만 (미국의 도움에 신의 가호 있으라) 충분치는 않았다. 일부 가옥에는 작은 텃밭에 소량의 채소를 길렀지만, 대부분은 그마저도 없었다.
석달 후 아사자와 동사자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버려진 집에서 모든 문, 창문틀을 벗겨서 태웠다. 나는 내 가구를 전부 난방에 소모했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죽었는데, 대부분 물이 나빠서였고 (내 가족 중 두 명이 그렇게 죽었다), 우리는 빗물을 받아 마셨으며, 비둘기를 여러번 잡아 먹었고, 한번은 쥐도 먹었다.
그 상황에서 돈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다.
암시장이 가동하면서 우리는 여러가지를 바꿔팔았는데, 예로 들자면: 콘 비프 캔 하나는 여자를 몇 시간 살 수 있는 가치가 있었다 (안타깝겠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내가 아는 바로, 그런 여자 대부분은 그저 필사적인 애엄마들이었다. 양초, 라이터, 항생제, 연료, 배터리, 총탄과 음식 등등이 거래됐으며 우리는 그런 것을 얻기 위해 마치 짐승처럼 싸웠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많은 것이 바뀌고,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괴물로 변했다. 끔찍했다.
무력은 숫자에 기반했다. 당신이 집 안에 혼자 있으면, 제아무리 무장을 잘 했다 할지라도 강도 당하고 살해당할 것이다.
어쨌든, 전쟁은 끝났고, 그에 대해 미국에 감사한다 (다시 신의 가호 있으라).
전쟁에서 어느 편이 이겼는지는 중요치 않다.
거의 20년 전 일이지만, 내게 있어서는 어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며, 나는 그에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나와 내 가족은 이제 잘 준비되었으며, 잘 무장했고, 많이 비축했으며, 많이 배웠다.
지진, 전쟁, 쓰나미, 외계인이든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는 중요치 않고, 진짜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이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때, 당신은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무력은 숫자에서 나온다. 가족과 가까이 지내고, 함께 준비하며, 친구를 현명하게 선택하고 그들도 함께 준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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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내용은 답글에 대한 답변글입니다.
사실상 도시는 거리 단위의 집단으로 쪼개진 상태였고, 내가 살던 거리(약 15~20채의 집이 있었다)는 협동 순찰조(매일 밤 5명의 무장 남성)가 돌면서 적이나 강도를 막았다.
우리는 같은 거리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거래했으며, 우리 동네에서 5마일 떨어진 어느 거리는 일종의 집단 교역꾼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까지 가는 길은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밤 시간에만 갈 수 있었다 (낮 동안에는 저격수 때문에 위험했다). 거기서는 거래하기 보다는 강도 당할 위험이 컸기 때문에, 그 동네는 딱 두번만 다녀왔으며, 정말이지 절실하게 필요한 경우에만 갔었다.
(왜 땔감이 문제가 됐느냐는 질문에)
발칸 반도 지도를 보면 많은 숲이 있지만, 내가 살던 도시는 국경 근처 남부였다. 그 도시의 이름을 거론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도를 잘 살피면 국경 부근 지역은 바위 투성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도시 내, 공원 등지에 나무가 있지만, 도시의 대부분은 건물로 돼 있으며, 믿거나 말거나지만 요리와 난방에 전기를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도시 내의 모든 나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사라지더라. 그게 다 소모되면 남은 것은 가구, 문, 나무 바닥 순서다... (그리고 그런 부류는 아주 빨리 소모된다.)
(강도가 차 타고 돌아다녔냐는 질문에)
우리 동네 내에서는 움직일 수 있는 차는 없었다. 대부분의 도로는 폐허와 잔해, 버려진 차량, 무너진 집 등으로 막힌 상태였고, 연료는 금처럼 귀했기 때문이다.
어딘가 가려면 항상 밤시간을 이용해야 했고, 혼자 가는 일은 절대 없으나 큰 집단을 이루는 일 또한 없었다 (2~3사람이 보통). 항상 잘 무장하고, 빠르게, 그림자에 숨어서, 폐허 사이로, 도로의 개활지는 최소한으로, 항상 숨어다녀야 했다.
우리 지역에는 교외 지역이라든지 농장이라든지는 없었다. 교외 지역은 항상 적군에 의해 점령돼 있고, 도시 내에서는 누가 적 편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그 사태 속에 10~15명 가량, 종종 50명 가량까지 뭉친 강도 집단이 있었다. 하지만 또한 당신과 나, 아버지들, 할아버지들, 보통 사람들 같은 죽고 강도 당하는 사람 또한 있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들 대부분은 회색의,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우리는 가진 것을 총동원해야 했는데, 당시 잘 준비되지도 않았고, 준비할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고로 당신 또한 우리가 일종의 석기 시대,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이 그 상태로 돌아가야 했음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가능한 무엇이든 사용해야 했다. 한가지 예를 들면, 나는 큼직한 프로판 가스통(부탄이었는지 종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음)을 갖고 있었는데, 난 이것을 요리나 난방에 쓰지 않았다. 매우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난 내 친구의 도움을 받아 그 가스통을 개조해서 가스통 호스를 일종의 작은 마개에 연결했다. 이를 통해서 나는 1회용 가스 라이터를 재충전할 수 있었고 (당신이 방법만 알면 1회용 가스 라이터는 더이상 1회용이 아니다.) 그런 라이터는 장래에 작은 도움이 되어주었다.
짧게 설명하면, 누군가 내게 빈 라이터를 가지고 오면 나는 그 라이터를 충전해주었는데, 그런 1회 충전 당 식량 캔 하나 또는 양초 하나 혹은 상대가 제시 가능한 뭔가로 바꿔먹을수 있었다.
또다른 예를 들면, 나는 훈련받은 정식 간호사였고, 당시 나의 지식 역시 거래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훈련받고 교육 받아두어라. 그런 상황이 닥치는 경우 뭔가를 고치는 방법만 알면, 모든 물건이 다 소모되는 날이 오더라도, 그 특별한 지식을 음식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한 고치는 방법이란 신발이나 사람, 또는 다른 뭔가를 수리하는 것을 말한다.
내 이웃은 오일 램프에 쓰기 위한 일종의 기름을 만드는 법을 알았는데 (잔에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꽃아 쓰는 그런 것) 그는 굶주리는 법이 없었다. 그는 내게 어떻게 기름을 만드는지 절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내 생각에 그의 집 뒤에 있는 나무와 소량의 디젤유를 이용한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요점은, 뭔가 배워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고쳐줄 사람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은 생존 영화가 아니었다. 그저 끔찍할 뿐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필요한 일을 했다.
이긴 사람 따윈 없다. 그저 우리는 무수한 악몽과 함께 살아남았을 뿐이다.
나의 집단에는 우리 가족, 내 혈연 관계인 친지(삼촌이나 할머니 등)으로만 구성돼 있었다. 우리 동네와 마을에는 가까운 친구도 몇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친구는 가족이었다. 나는 우리 그룹에 외지인은 절대 끼워주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발칸 지역에 산다. 단지 다른 동네로 옮겼으며, 좀 더 나이 들었고, 더 잘 준비되었을 뿐이다.
만약 내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석달 더 준다면?
흠, 아마도 바다 너머로 도망가겠지. (농담)
이제 나는 상황이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 지를 잘 알기 때문에 음식, 위생, 에너지 등등의 보급품을 6개월치 보유하고 있다. 나는 약간 보안을 강화한 아파트에 살고 있고, 내 아파트에서 5마일 떨어진 어느 마을에 피난처가 있는 집을 갖고 있으며, 그 집에도 6개월 분량의 보급품이 있다. 그 마을은 작은 동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잘 아는 사이이고, 역시 (지난 전쟁의 경험 덕에) 대부분이 잘 준비된 사람들이다. 나는 네 종류의 화기에 각각 2천발의 탄약을 갖고 있다(이곳 법률 관계 상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나는 그 집에 큼직한 텃밭도 갖고 있으며 텃밭 가꾸기와 농경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배워뒀다.
내 생각에 이제 나는 상황이 발생할 때를 냄새맡는 지혜를 가진 것 같다. 알다시피 모든 사람이 다 괜찮다고 할때, 뭔가 잘못돼간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내가 스스로와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본다. 상황이 더러워지면, 당신도 분명 자식을 살리기 위해 뭔가 나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확신한다. 당신은 영웅이 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가족과 함께 살아남고 싶어할 것이다.
혼자서 살아남으려는 자는, (이는 물론 내 의견이지만) 아무리 잘 무장하고 잘 준비해도 절대 살아남을 수 없으며, 결국에는 죽게 될 것이다. 난 이런 상황을 아주 많이 보아왔다. 가족 단위나 가까운 친구들이 많은 비축물자와 여러가지 다른 지식을 가지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
(한 사람이 혼자 매드 맥스처럼 살아남으려면 필요할 가장 중요한 한가지가 뭐냐는 질문에)
글쎄, 어떤 사람이 생존을 위해 준비하는게 아니라 강도처럼 살려고 할때 단 한가지만 꼽는다면, 총과 아주 많은 탄약이 될 것이다.
(뭔가 한가지를 더 비축할 수 있다면 뭐를 비축하겠냐, 가장 좋은 거래용 물자는 뭐냐는 질문에)
탄약과 위생 그리고 에너지(배터리 등등) 외에 꼽으라면, 주머니칼, 라이터, 부싯돌 같은 거래가 용이한 작은 물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아주 많은 양의 술, 오래 보존이 가능한 위스키 같은, 사실 종류는 중요치 않고 어쨌든 가장 싼 것으로 많이 가지면 좋다. 술은 절망적인 시기에 가장 좋은 거래물품이었다.
또한 위생 물품의 부족함은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직접 눈으로 본 바이다.
그리고 기타 간단한 물건들도 많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량의 쓰레기 봉지와 덕트 테이프(박스 테이프) 같은, 강조하지만 아주 아주 많은 분량이 필요하다. 용도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무기라면 간단하게 가는 것이 좋다. 나는 이제 45구경 글록을 항상 휴대하는데, 내가 그 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흔치 않은 구경이므로 나는 러시아제 TT(토카레프) 7.62mm 권총 두 자루 또한 숨겨다가 보관하고 있다. 이 동네에는 아주 흔하고 탄약도 많은 종류이기 때문이다.
나는 칼라시니코프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동네에는 세 가구마다 한 자루씩은 있으므로 역시...
(물은 어떻게 구했냐는 질문에)
전쟁 동안 나는 물은 대개 천장에서 (빗물을) 받아다 네개의 큰 통(드럼통 류)에 받아다가, 정수를 위해 끓였다. 마을 안에 강이 있긴 하지만, 상당히 오염된 상태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어쩔수 없이...
난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포럼(서바이벌리스트보드)에 배우러 온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얼마나 나아가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뭔가 추한 행동을 하기 위해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일로 삶의 관점이 바뀌었을거라는 말에)
물론 내 삶의 관점이 바뀌었다. 이제 나는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더욱 중요한 점으로,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나는 더이상 정부와 공권력을 전혀,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이 모든 것이 괜찮다고 장담하는 경우, 당신은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말해주는대로 믿지만 말고, 열심히 연구하라.
(무슬림 어쩌고 하면서 내전에 얽힌 종교적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에게)
약간의 해명이 필요할 것 같다.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에는 세 종교가 자리잡고 있다: 무슬림, 가톨릭, 유대교와 그리스 정교회. 난 무슬림이 아니며, 이 문제를 더 거론하지 않겠지만, 내가 설령 무슬림이라 할지라도 생존과 종교는 관련 없는 문제다.
나는 전쟁을 겪었고, 전투에 휘말렸고, 해야 할 일을 했으며, 젊은 남자들이 갈갈이 찢기는 꼴을 무수히 목격했다. 당신은 그런 참상을 영화 같은데서도 본 적 없을 것이다.
그런 문제에 나를 끌어들이지 마라, 이 주제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당신이 누군가 어떤 집단을 증오한다면 나를 거기에 연관시키지 말라.
나는 증오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지막에 스스로를 파멸시키기 때문이다.
그 전쟁은 내전이었고, 종교에 큰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종교의 사람과 만났을때 어쨌느냐"고 묻는다면, 내 가족은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답변이 될까?
되도록 간단히 해명하겠다. 공격자와 방어자가 있고, 내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편을 바꾸었다. 전쟁은 승자 없이 끝났는데, 주로 미국의 도움을 받아 조약을 맺는 것으로 종전했다. 그 것은 잘못된 이유로 인한 잘못된 전쟁이었다. 나는 종교나 인종 때문에 싸우지 않았다. 나는 가족과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싸웠을 뿐이다.
지난 15년간 우리는 평화로웠다. 우리는 우리의 적이었을지도 모를 사람과 살아왔다. 나는 종교나 인종이나 다른 어떤 이유로도 다시 전쟁과 적을 갖고 싶지 않다.
전쟁에 관한 어떤 것도 일반화하지 말라. 전쟁에는 좋은 편도 나쁜 편도 없다. 우리는 모두 상처입었고 우리는 다시 함께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편이든 나쁜 짓을 저질렀으며, 어느 편에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단 한가지, 생존술을 배우고, 여러분과 도움이 될만한 것을 나누고 싶어서일 뿐이다.
당신의 종교적 믿음, 인종, 정치적 의견에 대해서는 관심 없다.
내가 살던 도시의 전쟁 전에 대해 말하자면, 그냥 펑범한 발칸 지역의 마을이었고, 평범하게 좋은 사람들, 학교, 극장, 공원, 대학, 공항이 있고, 범죄율은 아주 낮았고, 내 생각에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작은 마을과 별 다를바 없을 것 같다. 나는 당시 여러분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젊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여기 전쟁이나 편가름이나 종교 등등에 대해 논하러 온 것이 아니다.
내가 살던 마을은 진짜 SHTF 상황이었고, 그 점에 대해서만 논하고 싶다.
인터넷에는 많은 자료가 있으니 전쟁에 대해서는 그런 것을 알아보는게 좋겠다.
다시 생존으로 돌아가자.
이 포럼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대량의 알콜을 비축하고 있다.
전쟁 초기에, 우리 집에서 가까운 가까운 작은 양조장의 벽에 유탄이 떨어졌다. 덕분에 우리는 라키아(보스니아산 위스키 종류, 포도로 만들고 아주 도수가 셈) 500리터 가까이를 얻을 수 있었다.
거래 물자로 아주 훌륭한 물건이었으며, 절망적인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소비했고, 또한 소독용으로도 잘 써먹었다.
위생에 관해, 컵과 쟁반, 종이와 플라스틱 등이 아주 많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거의 구할 수 없었다.
내 생각에는 식량보다는 위생이 더욱 중요한데, 비둘기를 쉽게 쏘아 잡을 수 있으며, 집안에 할머니가 계시다면 뒷산에서 먹을 수 있는 야생초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위생용품은 총으로 쏴서 잡을 수 없다.
물 소독용 정제, 세척제, 소독제, 비누, 표백제, 장갑, 마스크, 모든 일회용품류를 갖추고, 응급치료법 훈련을 받고, 작은 창상, 화상, 경우에 따라서는 총상을 처치하는 법을 알아두어라. 전쟁터에는 병원이 없고, 설령 의사를 찾더라도 의약품이 없거나, 의사에게 지불할 물건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생제를 쓰는 방법을 알아두고 아주 많이 비축해라.
의료 지식과 의약품을 충분히 비축하면 당신은 부자나 다름없다.
금과 은에 관해서, 나는 당시 가진 금붙이를 탄약과 바꿔먹었지만, 그다지 값어치는 없었다.
애완동물에 관해서, 나는 애완동물이 없고, 당시에도 애완동물은 거의 보지 못했다. 누군가 잡아먹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가능성이 있다.
소가족에 관해서. 흠,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다. 대개 작은 가족들이 서로 힘을 함쳐서 큰 집에 함께 거주하는게 보통. (내 경우엔) 인척관계인 것이 좋다.
소가족이나 혼자서는, 도심 SHTF 생존에는 적절치 못하다. 야생에서는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방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당신이 집안에 조용히 숨어있고 많은 비축 물자가 있더라도, 빠르든 늦든 약탈자가 올 터이고, 총 한두자루로는 어림도 없다. 잘 숨어서 저시인성으로 지내는 것에는 일단 동의한다. 타인을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일단 적이 나타난 상황에서는 숫자가 필요하고, 총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며, 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바로 당신의 가족이다.
도시 안을 이동하는 것에 관해: 앞서 말했듯이 항상 밤 시간에, 절대 혼자는 안되고 2~3명 단위로, 빠르게, 주변에 주의를 끌지 않게, 다른 모든 사람과 비슷해 보이는게 좋다. 다른 사람들이 지치고 가난하고 더러워보인다면, 당신도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많은 식량, 탄약, 깨끗한 옷가지를 갖고 있다고 광고하고 다닐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집에 보관해라. 다른 사람과 똑같이 보이게 주의해라.
누군가 당신이나 가족을 공격한다면, 그때가서 당신이 얼마나 잘 준비된 사람인지 보여주면 된다.
난 큰 집단에 속해서 다녀본 적이 없다. 그 시기 큰 집단이란 강도였기 때문이다.
내 경험담은 이정도다. 당시 나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 당신들처럼 여기 배우고 공유하러 온 것이다.
예컨데 나는 야외 생존술에 대해서는 별로 모르기 때문에 여기서 배웠으면 한다.
그 시기 죽거나 살해당한 사람이 장례식을 제대로 치르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은 빈 땅이라면 단 한치라도 사용했으며, 집 가까운 곳에 묻거나, 가끔은 정원에도 묻곤 했다. 도시 내의 공원 두세개는 공동묘지로 변했고, 전쟁 후에야 다시 파내서 정식으로 매장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시체를 태운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불에 관해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 어떤 사람들은 장작을 구하기 위해 밤마다 몇 마일씩 떨어진 곳까지 가서 나무를 해다가 집까지 가져와서 조리와 난방에 쓰곤 했다. 라이터와 성냥은 정말 값진 물건이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불을 피울 만큼의 장작조차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상 뭔가를 찾아다녀야 했다. 불, 장작, 음식, 탄약...
소금이 값진 것이였냐고 묻는다면 예, 하지만 당시에는 커피나 담배가 훨씬 값나갔다.
다만 이는 내 마을에서의 경험담일 뿐이고, 같은 처지에 처한 다른 마을에서는 소금을 훨씬 비싸게 쳐주었다고 한다.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암시장 관련 문제이거나, 도시 내의 창고 비축분 때문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니, 되도록 다 비축하는게 좋겠다.
앞서 알콜에 대해 많이 언급했는데, 내 경우 알콜을 거래하는 것에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 사실 평상시보다 술의 소비가 10배 쯤은 됐기 때문이다. 소독용이나 의료용을 빼고서도 말이다.
만약 당신에게 돈과 시간과 공간이 허락된다면, 담배나 양초와 배터리, 또는 식량을 거래용으로 갖는 것이 좋겠다.
당시 나는 프레퍼(위기 대비해서 각종 물자를 비축하고 준비하는 사람)가 아니었고,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SHTF 상황이 일어나기 며칠 전 정치가들은 TV에서 아무 문제 없다고 떠들어 댔었다. 그리고 하늘이 무너졌고, 우리는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조리에 관해, SHTF 이전에 우리 집은 전기로 난방, 조리 등등을 해결했기 때문에, 내가 처음 거래하기 시작한 것은 낡은 장작 스토브였다. 그것을 주방에 걸고 배기 파이프를 벽에 난 구멍으로 기워넣어서 조리와 난방에 충당했다.
여름 동안에는 집 뒤뜰에서 조리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벽돌담이 쳐져있기 때문이다.
음식의 냄새 문제는, 흠, 이 상황을 생각해보자. 전기 없고, 흐르는 물도 없고, 하수구는 몇달 동안 막혔으며, 죽은 시체가 무너진 집에 굴러다니는, 악취가 넘쳐나는 암울하고 엉망인 상황. 뭔가 좋은 냄새를 맡는 것은 아주 힘들 것이다.
영화 속처럼 깔끔한 일은 절대 없다. 항상 추하고, 더럽고, 냄새난다.
물론 나도 조리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이 약간 있지만, 아주 약간일 뿐이며, 앞서 말했듯이 충분한 인원과 충실한 무장과 방어가 있다면 그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야외에서는 좀 상황이 다를 것이다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근처에서 채집한 풀쪼가리를 넣은 팬케이크 비슷한 것을 먹었다. 기름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장작도 많이 필요없는 것이기 때문. 또한 입수하고 거래 가능한 모든 것을 먹었는데, 특히 쌀이 먹기도 좋고 조리에 장작도 많이 필요치 않았다.
운이 좋아서 비둘기 같은 웃기는 것을 먹어야 했던 상황은 적은 편이다.
내겐 항상 거래할 뭔가가 있었기 때문에 덕분에 내가 살아남은 것 같다. 물론 총 덕분이기도 하고.
(왜 낮보다 밤이 안전하냐는 질문. 밤이 숨기 좋다는 것 외에, 혹시 낮에 강도가 더 출몰한다든지 하는 이유가 있는가? 왜 2~3인 작은 그룹으로만 이동해야 하는지? 대집단으로 이동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저격수 때문에 낮에는 그 누구도 나돌아다니지 않았다. 전선이 매우 가까워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밤에만 나가야 했다. 거래라든지 장작을 찾는다든지(장작이 얼마나 중요하고, 구하기 힘든지 말못할 지경이다), 뭔가를 찾으러 간다든지, 누군가를 만난다든지, 뉴스를 들으러 간다든지(아주 아주 중요한 점. 많은 사람이 무슨 일이 일어나나 싶어서 나갔다가 죽곤 했다.) 기억하라, 새 소식을 전해들을 수 없을때, 라디오나 TV나 뭐든지 아무 것도 없을때, 사람들 사이에 유언비어가 설친다.
(당신이 밤에 나가야 했던 이유는? 목적지와, 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부탁)
앞서 이야기했듯이, 집 안에서 추위와 굶주림, 또는 작은 상처의 감염 따위로 죽던가 아니면 위험을 떠안고 나가서 살 길을 찾아보는 수 밖에 없다. 나는 뭔가 유용한 것을 거래하러 나갔다.
(당신이나 가족에게 떼강도가 들이닥쳤을때 상황을 해결한 방법은?)
나로서는 우리 집 상황 밖에 알수 없다. 또한 그리 상세하게 해설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우리에겐 화력이 있고, 튼튼한 돌벽이 있으니까. 또한 우리는 감시를 두고 있어서, 우리 동네 사람들은 잘 단결했고, 강도가 나타나면 많이 쏴댔다.
(탄약 등등을 거래한다고 언급했는데. 당시 당신이 얼마나 많이 쐈고, 얼마나 탄약을 갖고 있었으며, 얼마나 필요로 했는지?)
동네 안에서 사격전이 벌어지는 일은 흔했다. 처음에는 나는 충분한 무기를 갖지 못했다. 소총 한정과 권총 한 정(2차대전 물건), 약 100여발의 탄환 뿐이었다. 나중에 나는 소총과 탄약을 위해 물건을 거래했으며, 자동차 밧데리로 총 2자루를 얻었다. 탄약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아아주 많이, 가질 수 있는 한 최대로.
(당신이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구분한 방법은?)
대부분의 경우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법은 없다. 내 가족과 일부 진짜 친구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사람이 적일 가능성이 있다. 당신의 친구가 자식의 죽음과 당신의 죽음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를 놓고 보면 알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거래할 물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아내고 어떻게 거래했는지?)
대부분은 소문을 통해. 누군가 몇 블록 너머에 사는 노인이 식량 몇 캔으로 탄약을 원한다든지 하는 소문을 알려주면, 당신은 거기로 가는 것이다. 앞했듯이 항상 뭔가를 필요로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약간의 물건을 가지고 우리 동네에 거래꾼으로 찾아오곤 했다.
밤마다 일종의 장터 비슷한 것이 열리곤 했는데, 사실 스포츠 센터의 폐허 자리였는데, 당신은 거기 가서 뭔가를 찾거나 거래를 제시할 수 있지만 거기는 누가 통제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장소였다.
(당신의 집을 보호하기 위해 했던 보강책과 어떤 식의 보초를 섰는지?)
상당히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집을 둘러싼 벽돌벽이 있고, 출입구에는 모래주머니를 쌓았으며, 그 모래주머니 너머에는 구할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커다란 철판이나, 바위 등등을 놓았다. 집 안 창문 역시 총안구 약간을 뚫어놓는 것을 제외하면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틀어막았다. 가족 중 다섯명은 항상 싸울 준비를 했고, 한 명은 항상 집 밖 거리의 숨은 공간에서 대기했다. 거의 석기시대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저격수를 회피한 방법은? 사람들이 어떻게 경고해주거나 했는지?)
저격수를 피하려면 낮에는 집에 머무르는 수 밖에 없다. 야간에 저격수는 드물었지만, 밤에도 거리의 개횔지는 최대한 피하고, 지름길을 사용하고, 폐허에 숨어서, 조용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아울러 도로는 멈춘 차와 폐허로 막혀있었다.
위생에 관련된 모든 것이 크게 값어치가 있다. 휴지 역시 아주 많이 필요하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부터는 내가 아는 바로 사람들은 강도에 죽기보다는 위생 문제로 질병에 걸려 죽는 비율이 더 많았다.
(화장실은 어떻게 했는지? 밖에 나가서 해결했는가? 무엇으로 닦았는지?)
집 근처의 땅이라면 어디든지 삽과 함께 사용했다. 좀 더럽게 들리지만, 사실 정말로 더럽지만, 빗물 받아놓은 것으로 씻었고, 가끔은 강으로 나가기도 했다 (대부분의 경우 너무 위험했다.) 대개 우리에겐 휴지가 없었고, 있다 해도 거래에서 바꿔먹곤 했다.
정말 나쁜 상황이었다.
내가 조언을 주자면, 가장 먼저 준비할 것은 무기와 탄약이고, 그 다음으로 다른 모든 것이다. 모든 것, 당신이 돈과 공간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 최대한. 뭔가 부족하거나 잊어버리더라도 당신이 거래할 물건을 갖고 있는 한 문제 없다. 하지만 총과 탄약이 없다면 당신은 거래할 장소에 들어갈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대가족이나 큰 집단 그리고 아주 친한(정말로 아주 친한) 친구를 군식구라거나 먹여 살려야 할 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더 많은 총과 무력으로 생각했다. 이 사실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적응했다.
또한 상식적이고 간단한 문제지만, 나약한 사람들은 이른 시기에 사라지게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싸운다.
작은 물건을 챙겨라. 라이터, 양초, 부싯돌 등. 발전기가 있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지만, 내가 보기에 1천개의 일회용 라이터를 갖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발전기는 정말 좋지만 SHTF 상황이던 마을에서 발전기는 사람들을, 심지어는 군대를 불러들일 수 있는 반면 1천개의 일회용 라이터는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싸고, 거래에도 유용하다.
진짜 SHTF 상황은 정신 상태를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나중에 예를 들어보겠다.
(무기를 미리 등록해서 얻어두면 전시에 압수당한다, 차라리 그때 가서 구하는게 낫지 않겠느냐, 당신은 전쟁통에 어떻게 무기를 구했냐는 의견에 대해)
흠, 당신 말이 맞다. 전쟁이 시작되면 모든 집은 전쟁터에서 흘러나온 무기를 입수하게 되며, 경찰 역시 불법 무기 단속을 한다. 내가 아는 바로, 많은 사람들이 무기를 어딘가 숨겨놓는 것 같다.
나 또한 무기 등록을 하고 있으며, 우리 동네의 공권력 또한 "일시적 압류" 따위를 한다. 이 말은, 비정상적인 상황(폭동 등)에 정부는 모든 합법적 무기를 압류한다는 뜻이다. 고로 나는 항상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의 행동을 할 것을 염두에 둔다.
알다시피 어떤 사람들은 일상의 휴대를 위해 합법적 무기를 갖고 다니지만(나는 45구경 글록과 38구경 타우루스를 소유했다) 어떤 사람은 그런 합법적 무기와 더불어 SHTF과 "일시적 압류"에 대비한 불법적 무기 또한 숨겨두고 있다.
SHTF 상황에서 당신이 거래할 물자를 갖고만 있다면 무기를 입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다른 중요한 점으로, SHTF의 첫 날은 혼돈과 난리가 가장 극심한 날이며, 이때 당신은 총을 입수할 시간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 혼란 속에서 비무장으로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내가 겪었던 상황에서 아는 어떤 남자가 무전기에 쓸 배터리가 필요했고, 그 남자는 여분의 소총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맞바꿨었다.
흔한 부상은 당연히 총상에 의한 것이고, 전문가와 물자가 없는 상황에서 의사를 찾아야 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면 그가 살 확률은 잘해야 30% 정도일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상처의 감염에 의해 죽었다. 나는 3~4회 정도 처방할 항생제가 있었는데, 가족을 위해서 아껴두었다.
정말 사소한 것이 사람을 죽인다. 설사 조차도 의료와 물 섭취가 없으면 며칠 내로 죽는다. 특히 작은 아이들이 심하다. 피부 진균 감염, 그리고 식중독으로도 많이 죽었다. 우리는 손 쓸 방법이 별로 없었다. 기본적으로 상처는 동네에서 구할 수 있는 허브만을 처방할 수 있었으며, 상처를 입으면 라키아(독주)로 상처를 소독하고 어디서든지 항생제를 구하려 애쓰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응급 상황에서 상처를 치료하는데는 능숙하지만, 진행이 오래 걸리면 예후가 나빠진다.
내가 배운 교훈은, 위생 철저, 많은 약품, 특히 항생제. 당신은 많이 배워두는게 좋다. 온라인에서든, 훈련이든, EMT라든지, 응급처치 등등.
SHTF에서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정맥 찾는 법, 언제 약물을 사용해야하는 지 등등.
파상풍 치료제, 총상 처치, 독사 혈청, 아드레날린 킷(알러지 관련, 서로 다른 종류로 구할 것), 진드기 처리(진드기 관련 질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
간단한 산소 실린더와 BVM 마스크 같은 응급환자용 소생 키트를 갖는 것도 좋다. 그런 물품 사용법은 별로 어렵지 않다.
물론 당신이 적절한 훈련이나 자격증이 없다면 일상 속에서 이 물건을 사용하는게 불법일 수 있다.
하지만 SHTF 상황에서는 아무도 자격증 안따진다. 그냥 배워두고 당신의 구급약품 속에 넣어둬라.
항상 가난했기에, 나는 내가 가진 자원으로 돕고, 대신에 음식이나 뭔가를 받아왔다. 당시 나는 준비되지 않았지만, 이제 나는 필요로 하는 것을 잘 갖추고 있다.
(미국이 MRE를 공수해줬다는 것에 대한 질문. 미국이 식량 외에 다른 것도 줬는지? 어떻게 취급했는가? 사람들이 그냥 떨어진 보급품에 막 달라붙었는가, 아니면 모아서 나눠썼는가?)
좋은 질문이다. 미국은 MRE 말고도 몇가지를 더 주곤 했다. MRE는 개별적으로 떨어졌는데, 내 생각에 MRE가 든 큰 상자(한 300~500개 정도?)가 낙하산에 달려서 떨어지다가 일정 고도에서 상자가 열리면서 MRE가 비처럼 흩어져서 떨어지는 것 같다. 다른 종류로는 큰 팔레트 상자가 통채로 떨어지곤 했는데, 그 안에는 밀가루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가끔 쿠키나 비스켓이 작은 금속제 상자에 든 것이 들어있는 팔레트가 있던 것도 기억한다. 식량 외에 든 것은 집어본 적이 없다. 의류나 다른 뭔가가 담긴 것이 떨어졌다는 소문도 들어봤지만, 직접 본 적은 없다. 항상 헛소문이 횡횡했으니까.
이런 보급은 일정 스케쥴에 따라 오는 일은 없었다. 언제 올지, 어디에 올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먼저 온 사람이 먼저 가지고, 꼼꼼하게 뒤지면 더 얻고, 잘 무장하면 더더욱 얻는다.
(현지 화폐가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 돈으로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살 수 있었냐는 질문)
아니, 전혀. 가끔 외국 화폐로 뭔가를 살 수 있지만(달라나 독일 마르크) 그게 가능한 드문 경우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저평가됐다. 예를 들어 콩 1캔은 30~40 달러나 했다(일반 가치는 0.5달러 정도). 내 생각에 누군가 외부와 연계된 사람이 있어서, 암시장 등지를 통해서 엄청 돈 벌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경우조차 매우 드물다. 거래는 대부분 물물교환 형태였다.
현지 화폐는 매우 빠르게 침몰했고, 몇주나 몇달 정도면 끝장이다.
이 상황은 내 개인적인 경험일 따름이고, 4년간의 전쟁 중 어느 한 마을에서, 외부와 모든 것이 1년간 단절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무엇이 일어날 지도 몰랐다.
내 경험 상, 당신이 마을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면, 벽을 잘 갖추고 문에 화려한 방탄판을 대거나 창문을 막는 등의 행동은 하지 마라. 벽은 무너트리고, 창문은 깨트리고, 낡은 옷을 입고 부서진 LCD TV라든지 그런 쓰레기를 마당에 내놓고, 죽은 개나 고양이 같은 것을 마당에다 늘어트려 놓아 악취를 풍겨라.
집을 강도맞은 것처럼, 빈 것처럼, 전혀 관심가질게 없는 것처럼 위장해라. (우리들 대부분은 이미 벗겨진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특히 죽은 악취가 풍기는 곳에는 더더욱.)
물론 이런 모든 것을 행하기 전에 좋은 지하실을 장만해서 숨겨진 입구에 환기구도 장비하고 무기를 안에 장비한 다음 야간에만 생존을 위해 출입하는게 좋다.
그냥 내 제안일 뿐이므로, 너무 이것에만 의존하지 말 것.
당신이 가진 특정 기술을 친구나 가족에게 대주면서 거기서 함께 기거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앞서 독사 혈청을 이야기했는데, 뱀의 독은 너무 빨리 퍼지기 때문에 빨아낸다든지 하는건 어려울거라 생각한다. 뱀독에 효과적인 주사나 약물이 좋을 것 같고, 우리 동네에는 두 종류의 독성 뱀이 있는데, 그런 뱀에 대해 잘 알아두고 주변 환경을 파악해서 알맞은 약과 투여량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아이나 유아에 대해서,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아이를 돌보았는지, 아이들을 위한 물건을 거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
대부분의 물건과 같았다. 당신이 거래에 제시할 물건이 있다면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기억으론 유아용 유동식이나 분유 따위는 매우 비싸게 거래됐다.
연료는 구하기 힘들었다.
유아나 아동의 어려움은 위생 관련 질병에 훨씬 취약하다는 점이다. 깨끗한 물이 충분히 없다면 약한 애부터 먼저 아프기 시작하고, 의약품과 치료법을 모른다면 문제가 생긴다.
사람들은 유아 물품의 물물교환도 하지만, 그것을 찾고, 거래하고, 집으로 가져오는 것은 항상 사투였다.
고로 더 많이 비축할수록 문제는 적어진다.
(암시장에서 물물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는 질문. 거래용 물품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었는지? 특정한 방법으로 숨기거나 했는지?)
다시 강조하지만 아무런 정답은 없고, 앞서 말했듯 저시인성이 답이며, 우리는 모든 것을 숨겼다. 좋은 신발 한켤레가 있다면 나는 지저분하게 만들어서 숨겼다. 아무도 깔끔해보이지 않고, 아무도 깔끔해보이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아무것도 조직적이지 않았으므로, 거래는 거리에서 수소문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내가 MRE를 원한다면, 어두워질때까지 기다려서, 소총, 권총, 나이프, 검은 색 재킷과 신발과 충분히 많은 량의 탄약을 챙겨서, 하지만 달리는데 몸을 무겁게 만들지 않을 정도로만 해서, 내 형도 같은 형태로 하고, 우리 거리에서 첫번째 바리케이드(자동차 폐허)로 간다. 거기에는 우리 동네의 두 남자가 항상 있을법한 문제를 감시하고 있는데, 나는 그들에게 근처에 MRE 거래할만한 것이 있다는 소식 들어봤냐고 물어본다. 가끔은 있다고 하고, 가끔은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겠다고 판단하면, 나는 거래에 나선다. 다른 동네에 가서, 그 동네에서 감시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과, 혹은 그들 동네 사람 중 MRE를 가진 사람과 거래한다.
어떤 사람들은 거래하기에 "믿을만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동네의 어떤 지역은 더 위험하고, 어디는 그렇지 않다. 정해진 것은 없다.
종종 거래의 환율이 짧은 시간 내 급격히 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가 MRE를 이번 주에 두번 떨어트렸다면 식량은 더 싸지는 식이다.
모든 것이 항상 위험이 있었다. 어떤 거래자가 다른 거래자를 죽이려 들지, 거래를 할지는 알 수 없다. 처음 몇분간 두 사람(거래자)는 30~40미터 너머의 바위 뒤에 숨어서 대화를 하다가, 상호에 대한 믿음을 가진 후에야 거래에 나선다.
우리는 거래에 쓸 것은 몇가지 정도만을 갖고 나갔다. 많이 가진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기를 숨기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목표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무장하고 가난해보이는 두 사람이어야 했다. 만약 다수로 이루어진 집단을 본다면, 우리는 숨었다.
(치아나 구강 건강 문제에 대해)
물론 다른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앞서 말했듯이 석기 시대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고, 치과 의사가 없다는 것은 큰 어려움을 뜻한다. 몇 블럭 떨어진 곳에 사는 어느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플라이어로 이빨을 뽑아주었고, 입을 라키아(독주)로 헹구고, 근처에서 구한 허브로 처방한 다음, 물론 이후 즉시 항생제를 섭취해야 했다. 이에 대한 댓가는 담배 몇개 정도였다. 참고로 그는 수의사였다.
감염이 흔했음을 알아두라.
(우발적 화재가 흔했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한, 우발적 화재는 드물었으나 의도적 화재는 흔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목재 가옥을 짓지 않으며, 거의 항상 벽돌집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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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이 무너진 건물 등등의 사진을 보여주자, 한 사람은 떠돌이 집시들이 근방에 머무르면서 빈 집을 싹 털고, 집의 목재 같은 자재마저 벗겨간 것을 봤는데 그와 같다고 평함)
끊임없는 포격 때문에 그렇게 됐다. 그리고 밤 동안 사람들은 불 피우고 거처를 만드는데 쓸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긁어갔다.
나 역시 항상 버려진 건물에서 나무로 된 마룻바닥을 벗겨내는 일을 했는데, 그 목재는 너무 빨리 타버려서 굉장히 고된 일거리였다 (아마도 politure(역주: 목재 재질의 뭔가를 말하는듯?)라서였던듯)
(이웃이 만들었다는 그 등불용 기름의 특성을 묻는 질문)
노란색이었고, 가끔 갈색이며, 나로서는 그가 어떻게 기름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몇가지를 섞은게 아닌가 싶은데, 그는 비법을 철저하게 숨겼다. 그 등불은 병 안에 기름을 담고 병 뚜껑(아마 알루미늄)으로 10cm 길이의 신발끈을 통과시켜 꽂아둔 원시적인 것으로, 신발끈은 병뚜껑 위로 2~3cm 올라오고, 나머지는 전부 기름에 잠겨있다.
냄새가 끔찍했고, 검은 연기도 많이 났지만, 어쨌든 불빛이 난다.
물론 요리할 때도 이 기름을 쓸 수 있지만, 항상 쓰기에는 너무 값진 것이었다.
(등불에 사용했다는 기름에 대해, 질문자가 자신의 추측을 말함.
그 색깔이라면 내 추측과 맞아떨어진다. 만약 소나무에서 나온 기름이라면, 테레빈유라고 생각한다. 테레빈유를 디젤과 섞은 것은 테레빈유의 냄새를 감추기 위한 것인듯 하다. 그러면 무슨 기름을 쓰는지 알 수 없게 될테니까. 그리고 양이 부족하다면 혼합해서 불릴 수도 있고.
기본적으로 소나무가 필요하다. (테레빈유를 뽑을 수 있는 나무는 여러가지 있지만 소나무가 가장 흔하다.) 작은 손가락 절반 굵기의 구멍을 나무껍질로부터 1~2센티미터 정도 뚫는다. 거기에 세로로 비스듬히 깎은 파이프를 박는다. 파이프 아래에 바께스로 수액을 담는다. 수액을 증류기에 증류한다. 약 100~160도로 증류한다. 그렇게 증류한 액이 테레빈유다.
일년 내내 얻을 수 있지만 보통 늦겨울에서 이른 봄에 가장 많은 수액을 얻을 수 있다.
테레빈은 살균제로도 쓸 수 있다. 왁스에 섞어주면 광택제로도 쓸 수 있다.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감사한다. 나는 그걸 아주 여러번 쓰고도 그 정체를 몰랐는데.
(가족 중 여자들은 총을 사용할 줄 아는지, 남자만 총을 다루었는지?
안전을 위해 야간 경비 등 여러가지 일을 해왔다고 당신이 언급했다. 그렇다면 당신네 가족은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낮 동안 뭔가 즐길 거리를 하지는 않았는가?)
대부분 남자가 총을 사용하지만, 그건 대가족인 우리 가족의 경우이다. 다른 집과 다른 상황에서라면 얘기가 좀 다를 수 있다. 정해진 규칙은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식량이 충분하다면 우리는 평상시 낮에 집에서 하는 그런 일들을 하려 애썼다. 다만 그 시기엔 밤과 낮이 서로 바뀐 점이 다르다.
(당신이 책 쓰면 사겠다는 말에)
솔직히 난 글을 써본 경험도 없는데, 지난 이틀 정도 전부터 몇몇 사람들이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오더라. 모르겠다, 나로서는 굉장히 힘든 일일 것 같고, 쓰더라도 실명, 실제 도시, 심지어는 실제 세상을 언급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아마 가상 국가에 가상 도시에 가상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되, 사건만 진짜를 담는 식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누군가 야시경과 총에 대해 질문해왔다.)
무기는 상당히 단순한 편이었는데, 7.62mm와 7.65mm 빨간 깃발 권총(러시아제 권총의 복제품), AK-47(세르비아 버전, 당시는 괜찮은 총이었음)에 PAP 라이플(세르비아의 반자동 라이플, 고정식 총검에 나팔-또는 총류탄 옵션 선택 가능한 좋은 총(역주: SKS 말하는듯)) 그리고 무수한 사제총과 무기들. 예를 들면 수류탄 투척기가 있는데, 우리는 그걸 "취한 남자"라고 불렀는데 손으로 던지는 수류탄을 쏠 수 있는 큼직한 새총이었다. (안다, 아주 웃기게 들리겠지.)
물론 칼, 도끼 등도 많았고, 우리 동네의 어느 남자는 창도 한 자루 갖고 있었는데 그가 그걸 사용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에는 나는 야간투시경은 구경도 못해봤다. 우리 측에겐 없었다.
(알콜이 좋은 거래물품이었다고 하는데. 알콜 중독자가 뺏으려 덤벼드는 등 오히려 적을 불러들이는 위험성이 있어 안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에 관한 경험이 있는가? 문제가 된 적은?)
알콜 문제. 둘 다 맞는 말이다. 어려운 시기 사람들은 평소보다 훨씬 알콜을 원하므로, 일종의 도박성이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거래에 아주 좋은 물건임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는 알콜 거래에 있어 다른 물건의 거래보다 딱히 위험했던 적은 없다.
그리고 나도 꼭 알콜만 원하지는 않고, 창고에 뭔가 부피를 덜 차지하지만 흥미로운 거래 물품, 예컨데 배터리나 항생제 등등을 채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당시 내가 공짜로 구했던 것이 알콜일 뿐, 나는 그걸 돈 주고 산 것도 아니다. 고로 알콜을 비축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나를 공격했던 대부분의 이유는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다고 생각해서였으며, 그들은 내가 뭘 갖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탄약을 거래용으로 비축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표한다. 거래한 탄약으로 당신을 공격하지 않겠느냐는 것. 이런 문제의 경험은 없는가? 당신은 탄약 거래를 위해 비축하는걸 추천하겠는가?)
탄약 거래에 관해, 당신이 탄약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때때로 난 탄약을 식량으로 거래했으며, 몇 주 동안엔 반대로 식량을 탄약으로 거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절대, 절대 내 집에서 거래하지 않았고, 절대 대량을 거래하지 않았으며, 내 집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핵심은 당신이 비축 가능하다면(돈과 공간의 한계 내에서) 뭐든지 최대한 해두라는 것이다. 나중에 사태 속에서 당신은 가장 흔한 것이 뭔지 알게 될 테니까. 탄약과 총을 비축하는건 내게 있어 항상 첫번째 우선순위지만, 두번째 거래 우선순위가 뭐가 될지, 예컨데 가스마스크와 필터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당신이 의료 부분에 집중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항생제 부분에 관해서 더 들어보았으면 한다. 특히, 두 세가지 쓸만한 의료 물품을 대량으로 소유하는 부분에 대해서, 개인 용도와 거래용을 겸해.)
의료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내 비축 목록과 함께 써볼까 한다.
(당신의 방어 전략에 대해 듣고 싶다. 바위, 모래주머니 등을 쌓아올려 방어를 구축한다고 언급했는데. 다른 사람이 다른 축성 수단을 사용했는지에 대해,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어떤 것을 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도.)
우리 방어는 매우 원시적이었는데,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고, 그저 가능한 것이라면 뭐든지 했을 뿐이다. 유리창은 깨지고, 지붕은 포탄에 거의 날아가고, 모든 창문은 모래주머니와 바위 등의 뭔가로 틀어막혀 있다. 매일밤 나는 우리 안마당으로의 입구를 거리에서 줏어온 잡석을 쌓아 막았으며, 낡은 알루미늄 사다리로 벽 위로 기어올라가야 했고, 돌아올 때는 집 안의 누군가를 불러 사다리를 내려달라 해야 들어올 수 있었다.
우리 동네의 누구는 그의 집이 사방이 완전히 엄폐되는 위치에 있다. 만약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그는 밤중에 어느 방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이웃집으로 가서, 거기서 비로소 (폐허가 되고 파괴된) 집을 나가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비밀 입구를 가지는 셈이다.
좀 이상해보이겠지만, 경비가 좋았던 집이 가장 먼저 박살나더라. 물론 우리 이웃 중엔 담벼락, 개, 경보기, 창문틀의 쇠창살 등등을 가진 멋진 집에 살던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강도떼거리들이 이 그 집을 먼저 쳐들어갔다. 일부는 막아냈지만 일부는 그러지 못했는데, 총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그리고 집 안에 얼마나 비축했느냐가 결정짓는다.
고로 내 생각에 경비 체계는 좋은 점이지만, 저시인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경보기 따윈 잊어버려라. 도심에 살고 있고 재난 상황에 처하면 그냥 단순하고 특별해보이지 않는 안전한 집에, 많은 총과 탄약이 필요할 뿐이다.
쉽게 말해, 저시인성을 유지하고, 흥미를 끌지 마라.
지금 내 아파트 문에 안전을 이유로 철문이 달려 있으나, 이는 혼란 시기의 극초기 짧은 시간만 도움될 뿐이며, 그때만 버티면 나는 곧장 우리 동네의 무장한 사람들(친구와 친척)으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갈 것이다. (그럴수 있기를 바란다)
(이주 현상은 일어났는지? 지방에서 도시로 오는 사람을 봤거나, 혹은 도시를 버리고 지방으로 떠나는 일이 있었는가? 그런 현상이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지는 않았는지, 예컨데 어떤 때는 사람들이 한 장소로 움직이다가 나중에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든가?)
내 경우에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상황이 아주 급박하게 벌어졌으며 다른측 군대가 도시를 포위했기 때문이다. 군대가 오는걸 왜 보지 못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그 군대가 바로 우리편이었으며, 하룻밤 지나고 보니 걔들이 갑자기 적으로 변해서 사방을 포위한 것이다. 정치적 문제, 뭐 내전의 한 단면이 그런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듣기로 우리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는, 그리고 반대측 편의 시골 지역에 살던 내 친구는 듣기로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시골에는 밭도 있고, 옥수수, 밀, 과실수, 농장 등등으로 충분한 식량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나쁜 시기였지만, 도시보다는 훨씬 나았다더라.
도시를 빠져나가는 탈출구가 있었다면, 분명 우리는 사용했을 것이다. 단지 우리에게 그런게 없었을 뿐이다.
(아까 책 쓰라고 권한 사람. Fernando Ferfal Aguirre이 쓴 생존 관련 서적에서도 일반적인(국적 등을 명확히 명기하지 않은) 서술을 했다고 말함.)
그 아르젠티나 사람이 쓴 책은 안읽어봤지만, 인터넷에서 그 책에 대해 기사를 읽어보니 비슷한 점이 있고, 다른 점도 있는 것 같다. 경제적 몰락을 이유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쓴다면 전쟁과 포위전 때문이고, 어떤 점은 완전히 다르게 써야겠지.
하지만 과연, 가장 큰 문제는 식량, 거처, 안전으로 같겠군... 그는 큰 스케일로 붕괴하지만, 내 경우엔 일정 기간 동안만 완전히 중세 시대로 회귀한 셈이었다. 이는 어떤 영화에도 비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조그마한 소집단이 열심히 잘 하고 있고, 지도자는 현명하게 잘 이끌고, 단지 그들 전체가 세상과 단절되는 그런건 잊어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몇년 전에 다른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작가가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어떻게 바뀌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잘 묘사하고 있더라. John Christopher- Death of grass라는 책이었다.
(은행 계좌에 있던 사람들의 돈은 어떻게 되었는가?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돈을 되찾을 수 있었는가? 은행이 닫기 전에 출금할 기회는 있었는지?
집을 버리고 피난했다 되돌아온 사람이, 그들의 집을 되찾을 수는 있었는가? 만약 집주인이 죽고 전쟁통에 집을 차지하고 앉은 집단이 있는데, 전쟁 후에 계속 눌러앉아서 소유를 주장했는가 아니면 자기네 집으로 되돌아갔는지?
집세나 차량 등을 위해 은행 대출금이 있는 사람은 전후에 어떻게 됐는가? 신용 카드는 어땠는지?)
은행, 대출, 신용카드 등등에 대해. 모든 화폐 경제는 약 1년 만에 완전히 붕괴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건 여러가지 면에서 좀 답하기 어려운 난제다. 가능하다면 장래에 쓸 포스트에서 아주 기나긴 설명을 해보려 노력하겠다. 현재 20년이 지난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유럽 사법 재판소에 은행을 고소하고 있는데, 은행에 저축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기 아주 여러가지 일이 일어났는데, 화폐를 바꾼다든지, 다시 말해 화폐의 이름을 두세번 변경했고, 초인플레이션도 일어났고, 저축, 대출에 대한 서류도 많이 잃어먹고 등등... 그 상황속에서도 부자가 된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금도 여전히 부유하다. 나중에 따로 얘기해보겠다.
상황 후 사람들의 물건을 되찾아주는건 굉장히 어려웠다. 예를 들어: 내 아버지는 근사한 아파트를 한 채 갖고 있었으나 전쟁 때문에 거기를 떠나야 했으며, 전쟁 후 법원에 4년이나 불려다니면서 아파트 소유를 입증해야 했는데, 정권이 바뀐 데다가 소유를 입증할 서류도 부족해서였다. (도망칠때 해당 서류를 챙기지 못했다. 당시 그는 챙겨야할 더 중요한 것들이 있었기에.)
반면에 재난 중에 사람들은 그냥 빈 집에 막 들어갔고, 그걸로 땡이었다.
(차량을 가진 사람은 움직이는 차량이 있는 것 때문에 목표가 되지는 않았는가?)
당시에는 굴러다닐 수 있는 차량이 없었다. 움직이는 것은 탱크 한대가 최전방에 있었고, Lada Niva(러시아산 SUV) 한대에 문짝과 천장을 떼고 기관총(낡은 M53(역주: 유고제 MG42))이 있긴 했는데 거의 항상 폐허가 된 집 뒤에 숨어만 있었으며 사격 후에만 이동했다.
내가 이것을 "민간의 탈것"으로 부르는 까닭은 그 외엔 움직이는 차량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며, 거리는 사실상 돌무더기에 깔려있고 불안정했으며 연료는 너무도 비쌌다.
(큰 철문으로 막는다거나 쌔끈한 새 물건으로 주의를 끌지 말고 소지품을 더러워보이게 하라고 충고했었다. 그런 관점에서,
사람들에게 섞여 보이기 위해 근사한 "군사 장비"를 차려입는 대신 가난해보이게 입는게 생존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
나?)
주의를 끌지 않는 것은 크게 중요하다. 의복 문제는, 진짜 군대 같은게 아니라 일종의 동네 자경단이었으므로 대개 사제 의
류에 군복 일부를 섞어입고, 무기는 제각각인게 보통이다. 고로 딱히 정해진 규칙은 없다.
앞서 말했듯 잘 조직된 군대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군인과 비슷해 보이고, 비슷하게 행동해야 하긴 했으며, 우리 대부분
무기를 소유하고 적군과 강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 애썼다.
도시 안에서는 근사해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다른 누군가 당신을 쏘고 그 근사한 것을